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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학/재미붙이기

BBC 다큐멘터리 ATOM. 1부-3탄

ATOM 1부-3탄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오후 11:38

   

   

어느 날, 1925년 한 편지가 아인슈타인에게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는 원자 구조를 기존에 확립된 전통 과학의 원리로

설명하는 내용 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매우 기뻤고, 친구들에게

"드디어 우주 원리의 베일을 벗겼다"

라고 설레발을 쳤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브로이는 프랑스의 귀족 출신으로

자신의 연구실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부럽습니다. ㅜ.ㅜ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당시 드브로이는 에펠탑에서 무선장비를

다루는 보직을 맡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 전파를 다뤘던 경험으로

원자의 비밀을 밝히려 했습니다.

   

전파는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지면 일어나는 파문처럼 운동하고

이런 파동은 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수학 방정식을 따릅니다.

   

   

   

   

   

   

드브로이의 이론에는 이상한 양자 도약도 없었고,

수학적으로 잘 짜여져 있는 개념인 파동만이 있었습니다.

   

전통을 고수하던 과학자들은

원자에 파동개념이 들어오는 것에 큰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원자는 파동이 전부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양자도약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파동은 매우 익숙한 개념이었거든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전통적인 과학자들은

보어의 말도 안 되는 이론으로부터 승리를 이룬 것 같았고

보어를 비롯한 신세대 과학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 포기 할 보어가 아니었습니다.

   

   

보어는 수소스펙트럼을 설명 할 수 있는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믿었지만...

아쉽게도 그 당시의 보어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권위와 명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조국인 덴마크에서는 그를 엄청 좋아했습니다.

   

1916년 보어가 코펜하겐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라에서 그는 영웅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보어의 명성을 이용하여

쉽게 연구 비용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연구소를 지을 돈의 대부분이

맥주를 만들던 공장에서 대 준 것입니다.

네!! 세상이 이렇게 발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맥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맥주를 무시하지 마세요!

   

맥주를 마실 때마다

과학발전에 뜻 깊은 공헌을 해 준

보리와 효모의 희생에 묵념합시다. ㅜ.ㅜ

   

어쨌든... ㅋㅋㅋ 다시 본론으로 돌아옵시다.

   

   

   

젊은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

훗날 양자역학으로 불리게 될 새로운 이론에 일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큰 논란을 불러올 급진파 과학자들의 야심작이었습니다.

   

   

보어의 양자 도약 이론을 발전시킨 것.

그것이 파울리의 배타원리(Pauli exclusion principle)입니다.

   

여기서 배타를

그리스 문자 베타 ( β ) 로 착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그게 아니고요

   

   

이 배타 입니다.

배타적 경제수역

뭐 이런 단어에 쓰이는 그 배타입니다.

   

-피직이의 universics는

  공부 할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지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쉽고 재밌는 지식컨텐츠를 지향합니다. ^^-

      

   

   

어떻게 작은 전자 하나가 이런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일까요?

   

파울리는 새로운 양자 법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원자의 성질과

원자 결합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보어의 양자역학에 커다란 진전이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세상의 다양함과 생명에 대해

처음으로 설명 할 수 있는 이론처럼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인슈타인과 전통물리학 학파들에게는 큰 허점이 생겼습니다.

   

양자 도약처럼, 배타원리도 구체적인 근거는 없었습니다.

파울리 조차도 자신의 이론이 맞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전통물리학 학파들에게 이 이론은 거만하고 비과학적인 헛소리 같았습니다.

하지만 반격을 할 수 있는 무기가 전통파에게는 없었습니다.

어쨌든 새로운 이론들은 실험결과를 너무 잘 설명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때까지 원자 물리학에 대한 논쟁은

예의바르고 신사적이었지만

이제는 신세대와 구세대 모두 각자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양측 진영에 대표주자들이 등장합니다.

   

   

부분과 전체라는 책과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방정식과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슈뢰딩거

   

물리학계에 큰 획을 그은 두명의 거인은

성격도 완전 대조적이어서 서로를 증오했습니다.

   

   

슈뢰딩거는 열정적이고 철학적인 낭만가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 종교에 대한 책을 썼고 (뭐야? 별 책을 다 썼네...)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ㅋㅋㅋㅋㅋ비범하다 ㅋㅋㅋㅋ)

그는 아주 매력적인 성격으로

멋있고, 기품있으며, 세련된 데다, 말쑥한 옷차림으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아... 슈뢰딩거 부럽네...)

슈뢰딩거는... 여자를 밝혔다네요 ㅡ.ㅡ

결혼 내내 끊임없이 다른 여자가 있었다고 하니...

나쁜놈 ㅡ.ㅡ 쳇

1925년, 38세의 슈뢰딩거는

스위스의 알파인 리조트에 머물면서 옛 애인과 만났는데

그 여자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이들의 열정이 슈뢰딩거의 창의성에 촉매가 됐다고 하네요.

   

그냥 바람둥이인데 뭐 이렇게 꾸며주나 ㅡ.ㅡ ㅋㅋㅋ

   

암튼 슈뢰딩거를 표현하는 말로 이런 말도 생겼습니다.

   

"슈뢰딩거에게는 두 가지 일이 있었는데

여자를 만족시키는 것과

원자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는 두 방면 모두에 능력이 있었다."

   

과학계에서는 뭐 슈뢰딩거의 인간성이나 그런 것은 관심 없고

오로지 그가 이룬 업적만 관심이 있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옵시다.

   

   

   

   

이 파동방정식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 독특함은 바로 파동함수라는 것에 있습니다.

슈뢰딩거는 이 파동방정식이

아원자 세계를 완전히 묘사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과 그의 원자모형은

다시 한 번 과학자들이 간단하게 원자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슈뢰딩거가 전통 과학계에 가져다 준 안도감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슈뢰딩거의 모형역시 고전물리학자들이 받아들이기엔 여전히 이상했지만

그래도 전통과학의 상식으로도 그 그림을 그려 볼 수 있었고

과학자들은 그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슈뢰딩거 모델을 이용한 그림으로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직관을 발휘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 신세대 과학자들이 반격할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슈뢰딩거가 자신의 이론을 내놓고 있던 바로 그 해에

하이젠베르크는 독일 북부 해안의 섬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경쟁심이 아주 강했고

슈뢰딩거의 이론이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상한 양자도약이야말로

원자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열쇠라고 강하게 믿었습니다.

원자는 너무나 독특하기 때문에

파동이나 궤도

심지어 자신의 스승인 보어가 제시한 다층 빌딩과 같은

그 어떤 비유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지금까지의 모든 이미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이젠베르크...

그는 어떤 그림을 그린 것일까요?

   

   

저는 여기서 한번 더 끊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ㅋㅋㅋㅋ

   

다음시간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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